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정체성 (문단 편집) === 동로마는 비잔티움으로 불릴 이유가 없다는 의견 ===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용어는 한국사에서 [[신라]]와 [[통일신라]]를 676년 기준으로 구분하듯, 연속성 있는 한 나라를 후대 역사가들이 편하게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며 당대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특히 이 제국의 당대 명칭은 로마니아(로마국), 바실리아 톤 로메온(로마 군주국) 등이었다. 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100년도 더 지난 1557년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가 히에로니무스 볼프(Hieronymus Wolf)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고대 이름에 착안한 "비잔티움 역사집(CORPUS HISTORIAE BYZANTINAE)" 이라는 사료 모음집을 출판한 것이 최초 용례다.[* 이 시기는 오스만 제국이 [[쉴레이만 1세]]의 통치 아래 최전성기를 누리며 [[카를 5세]]의 신성 로마 제국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때다. 쉴레이만 1세는 1547년 아드리아노플 조약의 체결 때 카를 5세를 '스페인 왕'으로 격하하고 자신은 '로마 황제'임을 내세웠는데, 이처럼 '누가 진정한 로마 제국의 후계자인가'를 놓고 오스만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 간의 신경전 와중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원을 받고 있던 학자 볼프가 내놓은 새로운 용어가 바로 '비잔티움 제국'이었던 것. 즉, 볼프는 '오스만 제국이 그 후계자를 자처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국은 '가짜 로마 제국'일 뿐이며 우리 신성 로마 제국이야말로 '진짜 로마 제국'이다'라고 주장하고자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예전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명칭을 만든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용어는 신성 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의 '로마성'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창안한 지극히 '정치적인' 이름이었다. [[https://exhibits.stanford.edu/ruderman/catalog/kg590pf1938|관련 글(영어)]]] 그 뒤 [[몽테스키외]]를 위시한 서구 계몽사상가들의 영향력에 힘입어 중세의 로마 제국을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는 풍조가 정착되었다. 제국이 멀쩡히 살아 있던 당시에는 정통 로마에 도전하려는 서구권을 중심으로 '그리스인들의 제국' 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제국'이라는 단어가 운운되곤 했어도, 최소한 '비잔티움 제국' 이란 말 자체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인식대로 4세기부터 비잔티움 제국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그럼 '고대 로마 제국'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문제를 남긴다. 330년 동로마 제국이 시작됨에 따라 고대 로마 제국은 멸망했다고 보면 서로마 제국의 설명이 불가능해진다는 문제가 생기고, 그렇다고 330년을 기점으로 동로마 제국과 고대 로마 제국이 한동안 공존했다고 하기에는 당시 제국은 분열되어 있지 않았으며 통치자 역시 콘스탄티누스 한 명뿐이었던 사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로마 동서 분열'이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해인 395년은? 그러나 실제로 이 해에도 로마가 별개의 두 나라로 공식적으로 쪼개진 것은 아니었으며, 동로마와 서로마는 서로의 내정에 깊숙이 간섭하고, 이민족들의 침입에 상호 협력해 가며 열심히 대항했다. 게다가 소위 그 '분열'마저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제위를 동로마 황제에게 바침으로써 형식적으로 다시 합쳐진다. 그렇다면 [[이라클리오스]]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당시 제국을 줄기차게 공격하던 이슬람 세력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기네들의 상대는 이라클리오스 전이나 후나 로마였을 뿐이지, 어느 날 갑자기 로마가 사라지고 비잔티움이 새로 들어섰다는 인식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위에 언급된 '분열'이라는 말도 엄밀히는 틀린 얘기다. 분열은 시초가 다른 적대적인 정부가 들어섰다는 것인데, 동서로마는 시초가 같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개혁으로 만들어진 통치 방법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로마 동서분열'이라는 말은 올바르지 않고 '분할통치'가 올바르다. 또한 제국은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으로 국가가 나뉘지 않았고 단순히 로마 제국 내에 통치하는 지역의 황제가 구분되어 있을 뿐이지, 한 나라다. 지역을 다스리는 각각의 정부가 있을 뿐이지, 두 지역 사이의 국방 경계도 없고 그냥 하나의 나라이다. 현대적으로 비유하자면 상위 중앙 정부와 거의 격이 비슷한 지방정부에 의한 연방제도 구조로 볼 수 있겠다. 권력 자체가 분산되어 체제의 통일성이 약한 것처럼 보일수는 있으나, 현대 국가로 쳐도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높여준다고 해당 국가가 '분열'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단일 권력구조에 대한 구심력이 약하다' 정도로 설명될 뿐. 다만 여기서 단일 권력구조에 대한 구심력이 약한 건 문제였다. 상위 중앙 정부는 동서 로마 어느 쪽인지는 법규로 정해지지 않았으며, 그때그때 선임 황제가 있는 쪽이 상위 중앙 정부 노릇을 했는데 이러다보니 간혹 동서 로마 어느 한쪽이 자기가 아래 황제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가 생겨 불필요한 내전이 생겼다. 콘스탄티누스 VS 리키니우스, 콘스탄티누스 2세 VS 콘스탄티우스 2세 & 콘스탄스, 호노리우스 VS 아르카디우스[* 사실 아르카디우스가 형으로서 당연히 선임 황제였지만 두 황제가 너무 어리고 무능하여, 이번에는 실세 및 국력 간의 우열로 선임 황제가 정해질 초유의 황당한 사태가 빚어졌었다. 스틸리코가 서로마에서 건재하던 시절에는 서로마가 그리 밀리지 않았으나, 스틸리코가 죽고 그 나비효과로 로마 시가 410년에 털린 이후로는 서로마는 동로마에 대해 열세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망했다.] 등. [[옥스퍼드 대학]]의 동로마 연구자 에이브릴 캐머런(Averil Cameron)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동로마 제국은 결코 중세 시대에 새로이 형성된 나라가 아니었다.(It was not a new state formed only in the medieval period.) [[디오클레티아누스]] 때 분할된 동쪽 제국은 동로마 제국이라고는 불리지만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비잔티움이란 이름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비잔티움을 세웠다고 여겨지는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인 왕인 비자스(Byzas)의 이름이 라틴어화하여 비잔티움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Byzas라는 이름은 [[트라키아]]와 [[일리리아]] 지방에서 인명으로 사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